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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니, 다 떠나서 정말 진원탁의 말이 사실인가?
좌중,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는 그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물며, 소어의 심정은 오죽할까….
소어의 강철 같은 어깨가 가녀린 여인의 것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하나 진원탁은 작정한 것인지, 중인들의 반응 따윈, 조금도 신경 쓰지 않으며, 여전히 담백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내 동생 소어는 참 마음이 따뜻한 아이였소. 길 잃은 고양이나 개를 무척 좋아하던 아이였고, 워낙 총명하여 또래보다 말문도 빨리 텄지요.” “…….”
“우리는 간혹 세상을 살다 보면 우연을 어렵지 않게 경험하오. 해서, 처음에는 나도 그저 우연일 거라 여겼소. 하나, 진소어란 이름을 쓰는 고아가 사천 덕양현 출신이며, 총명하기 그지없는 데다, 옆구리에 붉은 점까지 갖고 있다는 건 결코,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일.” “진 금의위장….”
“진 소협. 당신은 내 아우 진소어가 틀림없소.” ***

‘끙…….’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통이었다. 오픈홀덤
소싯적 모용천과 수련할 때 소어는 이미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초극한의 고통을 체험했고, <귀곡산장> 제1방의 시련과 제2방의 시련에서 끔찍하다 못해, 영혼이 비산하는 듯한 고통 또한 감내해가며 오늘날 현경의 고수가 되었다.
하나 그 모든 고통은 육체에 국한된 것.
현재 소어의 육신과 넋을 괴롭히고 있는 고통은 육체에 가중된 고통과는 성정이 다른, 정신의 고통이었다.
그러한 정신의 고통은 정말이지 아득할 정도로 소어를 괴롭혔다.
또한, 소어의 의식 세계 저편에 잠재되어 있던 기억의 조각을 마구잡이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는데, 그제야 소어는 몇 가지 단상을 떠올릴 수 있었다.
-소어야……. 가엾은 내 동생 소어. 형이 꼭 오늘은 품삯을 받아서 맛있는 걸 사줄 거야.

-클클, 꽤 똘똘한 녀석 같군. 꼬마야. 부디 다음 생앤, 부잣집 아들내미로 태어나라. 날 원망하진 말고! 크크클!
-이 자식, 고작 대여섯 살밖에 안 된 것 같은데, 말을 왜 이렇게 안 들어? 이봐, 장씨! 요 녀석 불구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패주라고! 불구가 되면 절대 안 되네. 평생 광산에서 노역 살이 할 놈이니까!
단상은 그야말로 끔찍하고 참혹한 것들이었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부모님의 죽음과 목내이처럼 삐쩍 마른 채로, 저잣거리서 막노동하던 형의 존재.
더불어, 자신을 유괴했던 험상궂은 마적단과 처절했던 폭력의 시간들….
그 지옥 같던 기억은 마치, 꿈속 세상처럼 잿빛 바탕 위에 몽롱하게, 그리고 어렴풋이 형상화되어 소어의 의식 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있었다.
그러한 어릴 적의 고통들이 의지와 상관없이 물밀 듯이 떠오르자, 소어는 간담이 서늘해짐과 동시에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리는 걸 느껴야 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소어처럼 총명한 세이프게임 아이가 기억을 통째로 지워버렸을까….
‘이건… 두려움일까?’
아니다.
두려움과는 분명, 다른 감정이었다.
소어는 살면서 딱 한 번,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다.
열다섯 어린 나이에 일 대 일로 쌍마노괴 중 1인인 우천마검, 노영명과 맞닥뜨렸을 때.
그때가 유일하게 두려움을 느낀 순간이었는데, 현재 자신의 심신과 영혼의 심연을 완전히 집어삼키고 있는 이 낯설고 이질적인 감정의 요체는 그때의 두려움과는 다른 것이었다.
두려움이란 극복하면 그만이다.
소어는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실천했으며 지금껏 그렇게 살았다.
하나 두려움과는 다르면서도 마치, 자신의 몸을 공포의 바닷속에 첨벙 빠뜨리는 것 같은 알 수 없는 감정의 동요에 소어는 난생처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로 그저 멍하니 진원탁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덜덜덜-
미세한 떨림이 더욱 증폭되었다.
어느새 소어의 신형 전체가 폭풍 앞의 호롱불처럼 힘없이, 세이프파워볼 그리고 나약하게 달달거리기 시작했다.
‘소어야!’
그런 소어를 지켜보던 모용백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작금의 상황 자체에도 경악했지만, 그보다 나약한 소어의 모습은 생전 처음 목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소어야…….’
반면 백모, 연소소는 놀라기보다 소어의 마음을 짓누르는 충격과 아픔을 걱정하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언제나 자신만만하며 매사 광오할 정도로 설쳐대던 소어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오들오들 몸을 떨며 금시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자, 그녀의 가슴 또한 미어질 듯 저려왔다.
하나, 모용백도 연소소도.
두 사람을 포함한 장내의 누구도.
감히 무어라 입을 열 수 없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터다.
위로도 필요할 것이다.
모용백은 지금의 소어에게 힘이 되어 줄 수만 있다면 파워볼게임사이트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 것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위로가 되어 줄 수 없었다.
누구도 조언을 해줄 수 없고, 누구도 소어의 아픔과 충격, 가슴에 지워진 무거운 짐을 나눠질 수 없다.
오직 소어 자신만이.
자신만이 오롯하게 감당해야 할 일이었기에.
그리고….
망연자실한 눈으로 하릴없이 진원탁의 눈을 바라보고 있던 소어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당신… 정말 내 형입니까?” ***

“소어야…. 내 동생 소어야…….” 진원탁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일평생 앞만 보고 내달렸던 인생이었다.
배곯지 않기 위해서.
두 번 다신,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진원탁은 달리고 또 내달렸다.
어쩌면 그의 인생은 소어보다 더욱 고단한 길이었을지도 몰랐다.
소어에겐 적어도, 투신 모용천이라는 생불 할아버지와 온갖 행운, 기연이 따라왔지만 진원탁에겐 그마저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기뻤다.

지금 현재 그가 흘리고 있는 눈물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환희, 파워볼실시간 그리고 안도감의 발현이었다.
생이 다하여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까지 결코, 씻을 수 없을 거라 여겼던 과오와 가슴의 멍에를 털어버린 진원탁의 마음에 따듯하고 온화한 햇살이 내리쬐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형님.”
소어의 한 마디가 흘러나오는 순간, 진원탁의 마음이 와르르 허물어졌다.
“소어야!”
진원탁이 소어의 손을 덥석 움켜쥔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했던가?
분명 처음 잡아보는 낯선 사내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소어는 그 찰나의 순간, 진원탁이 틀림없는 자신의 핏줄임을 직감하였다.
그러자 심연 속에 침잠해 있던 무수한 기억과 단상들이 드문드문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내게는 형이 있었어… 아주 따듯했던 형이…’ 소어의 시선이 진원탁을 면면을 훑어갔다.
이제 보니 자신과 제법 닮은 구석들을 찾을 수 있는 얼굴이었다.
또한.
‘허……. 어쩐지 금의위장에게서 소어와 비슷한 기도가 느껴진다 했거늘. 그가 정말 소어의 친형이란 말인가! 소어야… 소어야…!!’ 소어와 진원탁 만큼이나 마음이 들뜬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모용백이었다.
그의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 여보… 체통을 지키셔야죠.” 남편의 주책맞은 모습을 보며 연소소가 당황하여 귀에 대고 속닥였다.

하지만.
“……응?”
체통을 지키긴 누가 체통을 지킨단 말인가.
정작 그렇게 말하는 연소소는 이미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을 하고서 촉촉한 눈망울을 반짝이는 중이었다.
“소소… 당신이나 좀…” “앗…”
이리저리 마음 여린 모용백, 연소소 부부는 그제야 서로를 바라보며 얕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음에는 어색했기에 쭈뼛거릴 수밖에 없었다.
혈육이라고는 상상도 안 하고 살았던 소어기에 예고 없이 다가온 친형의 존재를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
하나, 한 번 트이기 시작한 감정의 폭발과 마음의 변화는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파문이 되어 이내, 소어와 진원탁을 휘감았다.
두 사람은 장내의 상황이 정리되기도 전에, 밖으로 나와 한적한 촌로를 정처 없이 거닐기 시작했다.
“소어야…. 너와 할 말이 많다. 그리고 정말 미안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네가 유괴되었을 당시, 나는 한동안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비통한 심정을 갈무리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자, 마음 한구석으로는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내 발목에 채워진 족쇄를 풀어헤친 느낌이었지. 비록 어렸지만 내 입 하나는 건사할 자신이 생겼던 게야. 나는 정말 쓰레기 같은 놈이다.” 너무나도 솔직한 고백이었다.

그것도 잃어버린 동생을 찾은 첫날, 이런 고백을 한다는 것은, 진원탁이란 인간이 얼마나 진솔한 인간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하나 소어는 개의치 않았다.
부모를 여의고 집도 절도 없이 떠돌며 어린 동생까지 건사해야 했던 어린 날의 진원탁에게 절로 감정을 이입했던 까닭이었다.
“아닙니다, 형님. 아니에요… 나는 이해합니다.” “소어야…”
진원탁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자 소어는 씨익 미소를 선보이며 그의 마음을 풀어주는 한편, 우중충한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했다.
“형님을 만나고 이렇게 하릴없이 걸으니 옛 기억들이 드문드문 떠올라요. 아직 내가 유괴범들 손에서 어떻게 탈출하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면양현에서 덕양현까지 가서 떠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형님이 제게 잘해주셨던 건, 기억이 납니다.” “내 예상이지만 아마 유괴범들은 성도를 이동하는 와중, 관군이나 사천 당문의 추적을 받았을지도 모르겠구나. 당시, 사천 지방은 흉년에 가뭄이 겹쳐, 굶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고 부모 잃은 고아들이 흔한 시절이었다. 해서 각종 유괴나 인신매매 등의 범죄가 들끓었는데 마침, 관과 사천의 패자인 당문이 합동하여 인신매매단을 잡아들이던 시기가 있었다. 그 혼란 속에서 소어 너는, 운 좋게 탈출하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진원탁의 말에 소어가 고갤 끄덕이다가 짐짓 입술을 달싹였다.
“형님. 그러는 형님은 그간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당최 얼마나 고되고 험난한 인생을 사셨으면…. 그와 같이 힘든 역경을 딛고 오늘날, 황궁의 금의위장이 되신 거예요?” 문득 궁금증이 치밀었다.
그만큼 천애고아로 황실 금의위의 좌장이 된다는 건, 어쩌면 맨손, 보부상으로 시작해 오늘날 중원 3대 재벌이 된 이건희 대인과 필적할 정도의 성공신화였으니까.

“뭔가 비법이 있거나 한 건 아니었다, 소어야. 다만, 나는 너를 잃은 뒤 절치부심하여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학문과 무공에 정진하였다. 이는 일견, 쉽게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꾸준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힘든 일이지.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한 마디로 그냥 열심히 노력했단 말이다.
하나 소어는 그 어떤 휘황찬란한 달변보다 진원탁의 단출한 말 한마디가 더욱 가슴에 와닿았다.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
그것은 소어의 인생철학과도 일맥상통하였고, 소어 역시 ‘노력’이란 단어의 참된 가치를 누구보다 절감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때.
“소어야. 나는 네게 비하면 정말 조족지혈이다. 너는 그 어린 나이에 어쩌다가 이처럼 대성하게 된 것이냐?” 진원탁이 혀를 내두르며 소어에게 물었다.
그의 말마따나 소어의 입신양명은 진원탁의 성공신화보다 더욱 믿기 힘든 충격이요, 거의 괴담에 가까운 것이었다.
부모를 여의고 정처 없이 떠돌던 천애고아가 작금 강호무림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청년 고수가 되었다.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일진대, 이와 같은 입지전적 생애를 창출했으니 소어의 인생도 능히, 역사에 자리할 전설이라 할 만했다.
“대성이라… 제가 대성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 인생의 전반을 논하려면 그분 이야기를 먼저 해야할 거 같네요.” “그분?”
“할아버지요.”
“…….”
“아홉 살 때, 절 거두어주신 우리 할아버지. 투신(鬪神), 모용천.” 그렇게 말하는 소어의 시선은 아련함을 머금은 채, 허공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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